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영화 '우리학교'를 추천하며

View Comments

1. <우리학교>, 보수적인 이들조차 보고 감동을 받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한국에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며, 앞으로도 소규모 공간에서, 찾아가는 상영을 하기 때문에 관람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에서도 5월 중에 상영계획이 잡혀 있다.
   
검색을 해보면 다들 찬사 그 자체이다. 하긴 나머지 반쪽에 대해 관심에 더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2. 지난 4월 10일 일군의 벗들과 함께 광화문의 씨네큐브에서 영화 <우리학교>를 보았다.누군가 'PD를 울리는 NL 영화'라는 평을 했다고 하던데, 역시 그 공간에서도 감동의 흐느낌을 보인 이들이 많았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영화를 만든 김명준 감독은 영화를 찍다가 죽은 아내의 뒤를 이어 몇년간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 지내면서 이를 찍었다고 한다. 그 열의와 정성이 깃든 영화인 만큼 감동의 쓰나미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3. 그래도 할 말은 있다.
 
그 '우리학교'에서는 국민윤리 대신 북한의 주체사상을 배우고, 남측의 국경일 대신 북의 국경일을 챙긴다. 학교라는 것이 가진 기능상 이러한 정치적 색채는 당연한 것이고,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의 이희동 기자가 말한 것처럼 "조총련 사회에서 학교가 가지는 위상은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조총련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는 지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최소화하면서 그 주변을 훑는 것으로 '우리학교'를 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넘어갔지만,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들이 노래자랑을 하는 행사는 태양절 기념으로 하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기념하여 하는 것인데, 이건 아무 것도 아닌가.
 
4.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 근무하는 일본인 교사는 "나 아닌 남을 위해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고 얘기를 한다. 남을 위해 축구를 하고, 배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그런데 그 남이 민족이라면?
   
영화에서 '우리학교'로 편입을 온 어느 학생은 일본 학교에 있었으면 지금쯤 소년원이나 전전했을 테지만 민족학교에 와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얘기한다. 그들에게 민족학교는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민족에 대한 강조가 타당한 것일까. 이희동 기자가 말한 것처럼 "소수자로서의 자이니치는 20세기 '국가'와 '민족'이 만들어낸 문제이며, 이는 기존의 관념을 강조한다고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한 내의 이주민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코리아국제학원(KIS) 설립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KIS는 민족교육을 최우선으로 했던 기존 재일동포 학교와는 달리 다문화 공생을 최대 교육목표로 하면서 재일동포들의 삶과 인식 변화에 대처하고자 한단다.
  
5. 하지만 <우리학교>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조총련 사회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는 공교육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경쟁이 아닌 연대를 가르치고, 전인교육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6. 수학여행을 북으로 갔다 오면서 북을 조국으로 여기고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해나가는 학생들, 자신만만하게 민족교육에 의미부여를 하는 3학년 담임인 박대우 선생, 민족학교에서 20년이 넘도록 근무를 하면서 학교의 후배교원들을 양성하고 암으로 죽은 노교사, 북핵사태 이후 입고 다니는 옷 때문에 탄압을 당하는 학생들, 남여간의 복장 차이 등 생각할 꺼리는 많다.    
   
7. 편입을 했으면서도 오히려 인터뷰에 가장 많이 나와서 인상적이었던 여학생은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후배였던 상은이와 비슷해서일까.
 
8. 영화 속에서 '청춘'이라는 노래가 하모니카 연주로 경쾌하게 흘러나온다. 이런 식으로 편곡되니 꽤 그럴싸하다. (참고, 청춘, 청춘을 빛나게 살자 ) '버스를 타고'라는 노래는 괜찮더라.
영화의 주제곡은 '우리를 보시라'이다. 이것도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노래로서 상당히 인상적이다.  
       
9. 추가.  인권오름의 감독인터뷰를 빼먹었다. 이것도 읽어보시라. 그 글의 독자의견에 달린 글이 인상적이다.
  
2. 민족은 하나다?... 2007-04-26 14:23  
그 우리학교를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은, 일본의 자민족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의 결합으로 배제 되는 소수민족들이 재일조선인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재일조선인들 안에도 있는 차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본사회에서도 실력자로 행세하는 재일조선인 사장들, 그리고 여타 이름없이 일본인이라기보다는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조선출신 사람들에게, 하나의 '우리'라고, 동일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패권때문에, 재일 조선인들의 집단적 민족주의가 저항으로서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그 공동체의 한계 혹은 상상된 면도 분명할 것이다. 예컨대, 독일의 한인 이민사회의 한글학교, 중앙아시아나 러시아로 이주된 조선인들의 이민사회, 이것들은 분명 재일조선인들의 모임과는 다른, 같은 민족의 다른 모습들, 과연 이것들은 동일한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일본의 소수민족인 조선인 학교를 봤을 때, 우리는 우리안에 감춰진 다른 사람들, 이주노동자들, 외국인들, 소수민족들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모임의 존재는 당연한 권리다. 극우적인 일본사회가 부정하건 말건, 그리고 우리가 여러가지로 부정하고 있건 말건. 
  
[인권, 영화를 만나다] 차별과 억압의 이름, 재일조선인
<우리학교>, 김명준 감독, [감독과의 인터뷰] (인권오름 제 51 호 [입력] 2007년 04월 25일 2:09:53, 김일숙)
                    

http://cineseoul.com/online_marketing/our_school_14/images/ost_02.mp3 

우리를 보시라('우리학교' 주제곡)

(작곡 윤영란 작사 리명옥 노래/연주 조선대학교 경음악단)
   
그 언제나 나를 보는 눈길들 내가 서는 자리마저 하나없듯이
마음을 숨기며 발자취도 감추고 세상에는 저 혼자라 알아왔네
단 하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동무들이 나를 나를 이루어주고
두 팔을 크게 벌려 여기 오라고 안아주는 나의 학교
  
우리를 보시라 그 어디 부럼 있으랴
마음껏 배워가는 이 행복 넘치네
아침의 해빛이 아름답고 고운 그 모습을 그려 살리라
  
굽이굽이 돌아드는 이 길을 함께 가니 푸른 하늘이 열리여있네
조선옷 입고서 얼굴 바로 들고서 날마다 학교가는 이 기쁨아
불리우는 이름을 몰랐었네 자란 곳이 다른 줄을 몰랐었네
더는 헤매지 말고 웃어 보라고 안아주는 나의 학교
  
우리를 보시라 그 어디 부럼 있으랴
참되게 살아가는 이 행복 넘치네
아침의 해빛이 아름답고 고운 그 모습을 그려 살리라

  

우리 학교 (김명준, 2006)

 
 

 


 


[분수대] 우리 학교 [중앙일보,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2007.05.04 19:24]
  
여기 두 학교가 있다. 규모는 작고 초라하지만 먹먹한 감동을 주는 학교다. 둘 다 일본의 '조선 학교'다. 동포들이 다니고 '민족교육'을 한다. 이념으로는 총련계, 친북성향이지만 그것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북한.일본으로 국적이 제각각인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고향은 남북 모두"라고 말한다.
  
하나는 김명준 감독의 영화 '우리 학교'에 나온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또 다른 하나는 지난달 29일 SBS TV 'SBS스페셜'에 소개된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다. 두 작품 모두 세상 때라곤 모르는 원초적 천진함을 간직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울렸다.
   
'우리 학교'는 김 감독이 3년간 학교에서 함께 생활한 기록이다. 개봉 한 달 만에 3만5000명이 관람해 독립 다큐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미디어센터나 지역공동체를 찾아가는 '지역상영회' 요청이 8월까지 밀렸다. 입소문은 국경을 넘었다. 미국 동포들은 감독을 초청했고, 일본에서는 이달 중 상영회가 시작된다.
   
'SBS스페셜' 방영 이후 '조선학교 지원 모금'활동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와 학교 부지 소송에서 가까스로 이긴 학교가 6월까지 1억7000만 엔(약 14억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학교는 우리에게 잊고 있던 공동체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출연자들은 "학교야말로 민족사회의 중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징용 등으로 끌려온 1세대는 버려진 땅을 일구어 학교를 세웠고, 그들의 자손은 학생과 교사가 됐다. 집이 멀어 기숙하는 초등생들은 교사와 한 방에서 잔다. 이들에게 학교는 가족이자 생활공동체인 것이다.
  
말끝마다 '민족' '조선사람'을 내세우니 탈민족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조차 유일한 일본인 교사의 말 앞에 무력해진다. "나는 오직 나를 위해 축구를 해 왔다. 이 학교를 처음 알았을 때, 나 아닌 남을 위해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축구선수 출신인 그가 조선학교 체육교사가 된 이유다.
  
'우리 학교'의 엔딩은 졸업식이다. 온통 눈물바다다. 졸업생은 "조교는 우리의 영원한 모교"라고 울먹거린다. 스승의 마지막 말도 똑같다. "앞으로 세상 일이 힘들 때마다 학교를 기억하라. 학교는 너희들의 영원한 모교다."
   
세상사에 치일 때마다 위로받을 수 있는 고향 같은 학교. 그 안에서 해맑게 해방된 아이들. 어쩌면 그들 인생의 최고 축복은 학교였다.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학교가 있는가.
   
-------------------------------------------
日에 ‘코리아 학교’ 문 연다…재일동포 사회의 새 실험 (경향신문, 도쿄|박용채특파원, 2007년 05월 03일 19:03:50)
   
재일동포 사회에 남과 북,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제3의 한인 교육기관이 내년에 문을 연다.
한반도 분단상황에 따라 출렁였던 재일동포 사회에 체제와 이념, 민족을 초월한 교육기관이 설립되는 것은 처음이다. 60만 동포사회 교육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재일동포 학교설립준비위원회는 “중·고 일관 교과정의 ‘코리아국제학원’(KIS·가칭)을 내년 4월 오사카(大阪)에 설립한다”고 3일 밝혔다. 오는 27일 이와 관련한 발기인대회가 개최된다.
이를 위해 오사카부 이바라키(茨木)시에 교사 부지 4000㎡를 확보한 상태다. 개교 첫 해인 내년에는 중·고교 1학년 과정에 각각 35명씩을 모집할 예정이다.
 
준비위에는 시인 김시종씨, 강상중 도쿄대 교수 등 진보적 성향의 재일동포 지식인과 동포 기업인, 일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구로다 세타로(黑田征太郞) 등이 참여하고 있다.
  
KIS는 민족교육을 최우선으로 했던 기존 재일동포 학교와 달리 다(多)문화 공생을 최대 교육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학습지도 요령에 구애받지 않도록, 일본 학교 교육법에서 정하는 ‘정식 학교’가 아닌 ‘각종 학교’로 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수업도 한글·영어·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진행한다. 일본 국적 학생들에게도 일부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다.
  
준비위는 이번 학교설립 구상이 기존 민족교육만으로는 재일동포들의 삶과 인식 변화에 대처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재일동포 자녀들에 대한 교육은 전후 1세대들이 설립한 이른바 민족학교 등에서 맡아왔다. 이들 학교는 한반도 분단상황에 따라 한국계의 경우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북한계는 재일조선인총연합(총련)이 중심이 돼 일본 각 지역에 설립, 운영돼왔다.
  
그러나 재일동포 사회가 4세대로 접어들면서 남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한·일간의 국제결혼, 귀화, ‘뉴커머’로 불리는 새로운 도일 한국인 증가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현재 민족학교는 학생수가 줄면서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고, 일부 청소년들은 정체성 혼란도 겪고 있는 상태다.
  
준비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상중 교수는 “동아시아에서는 근대 이후 지속됐던 국민교육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가 태동하고 있다”며 “태어난 지역은 물론 국가와 경계를 뛰어넘어 활약할 수 있는 인재육성이 필요하다”고 새 교육기관 설립 의의를 설명했다.
  
재일동포 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학교설립이 지난해 민단과 총련의 50여년 만의 화해 시도가 뿌리깊은 반목으로 결국 물거품이 되면서 체제를 뛰어넘는 제3의 방안이 모색되는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우리학교>는 공교육에 관한 영화다 (오마이뉴스, 이희동(all31) 기자, 2007-04-21 18:17)
[리뷰] 젊은 교사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 
  

 
▲ 공교육에 관한 영화, <우리학교>.
 
ⓒ 스튜디오 느림보
또다시 교육 3불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미FTA를 불식시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대선용 편 가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즘 보수 신문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교육 3불 정책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펴고 있으며, 정부 역시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고만 하고 있다.
  
양측 모두 학생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 충언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마냥 수업내용 따라잡기에 급급할 뿐, 그들의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올해 중학교 선생님이 된 후배의 말에 따르면, 선생님이 무슨 말 한 마디만 해도 먼저 그것이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 되는가 묻는 것이 이 시대 학생들의 현주소다.
  
과연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은 위정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결국 공교육이란 그 사회가 꿈꾸는 이상과 유지하고자 하는 현실과의 대립이 벌어지는 가장 작은 단위일 터, 그 어느 때보다 신자유주의에 근거하여 극한 경쟁을 장려하는 이 정부가 자랑스럽게 지키겠다는 공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그보다 그들은 공교육을 통해 확립하고자 하는 사회상을 세우고 있기나 할까?
  
최근 개봉된 영화 중 일그러진 우리의 공교육에 대해 한 번 쯤 성찰케 하는 작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화 <우리학교>이다.
  
영화 속 거세된 정치성
 
▲ 정체성을 찾는 과정의 학생들.
 
ⓒ 스튜디오 느림보
어떤 이들은 이 영화와 관련하여 공교육만을 거론하는 나의 설명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영화 <우리학교>는 일본 내 거주하는 자이니치(在日)에 관한 영화로서 그 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총련계 동포들에 관해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냥 북한 추종자로 알았던 그들의 역사와 일상들.
  
실제로 나 역시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일본에서 온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소위 민단계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일본학교를 다니다가, 민족교육을 중시하신 아버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조총련계 학교를 다닌 분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후 기자가 되기 전까지 민족학교에서 몇 년 동안 교원으로도 생활을 했었으니, 그녀가 권한 <우리학교>는 내게 역시 민족학교에 관한 영화로서 권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생각 외였다. 우리의 국민윤리 대신 북한의 주체사상을 배우고, 우리가 배우는 왕조 중심의 국사 대신 사회주의 사상에 근거한 민중 중심의 조선사를 배우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는 무엇보다 조총련 학교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색체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조총련 사회에서 학교가 가지는 위상은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조총련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는 지적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역사에 무관심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일본 사회 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그들이기에 학교 교육이 갖는 정치성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영화를 통해 조총련계 동포들을 처음 접한 이들은 '고향은 남한, 조국은 북조선'이라는 그들의 언사에, 혹은 북한 인공기를 가리키며 '우리나라 국기'라는 그들의 당연한 반문에 놀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 영화에는 실제 조총련 학교와 북한과의 고리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학교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가 결국 교육을 통한 공동체의 유지라고 한다면, 결국 조총련의 교육이 우리의 학교 교육과 가장 다른 것은 역시 남북의 정치와 사회에 관련된 것일 텐데 영화에서는 정작 그 부분이 생략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내용의 대부분이 수업 시간 외 활동에 집중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이다.
 
▲ '조국' 북한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은 학생들.
 
ⓒ 스튜디오 느림보

따라서 영화 말미 북한을 방문하고 온 학생들의 감정은 스크린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들의 북한방문을 보며 우리들의 졸업여행이나 수학여행을 떠올릴 수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차별을 받으며 조선어와 조선사를 배웠던 그들에게 북한 방문은 우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뿌리 찾기의 실로 감격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분단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영화가 받을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영화의 정치성을 거세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조총련계 동포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누락시킨 꼴이 되었다.
  
자이니치(在日)로서의 그들

 
▲ 그들에 대한 또 하나의 키워드 '자이니치'.
 
ⓒ 스튜디오 느림보
영화를 밋밋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하나같은 정체성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이 조선인임을 절절히 깨닫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이들이다. 일본 학교에 있었으면 지금쯤 소년원이나 전전했을 테지만 민족학교에 와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어느 학생의 말처럼, 영화 속 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본 사회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는 현재 일본 자이니치 사회에서 다수를 점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영화 < GO >에서 볼 수 있었듯이 실제 많은 자이니치들은 일본 사회의 차별과 국가체제가 갖는 폭력성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자이니치로서 그들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새롭게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에 대한 배신도, 반역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사회를 살아내는 소수자로서의 자이니치가 갖는 현실적인 문제이며 남과 북이 '민족'이란 당위성만으로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지점이다.
 
영화는 바로 이와 같은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을 누락시켰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받는 부당한 차별은 간혹 언급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자이니치들이 고민하고 있는지 영화는 결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영화 속 대부분 등장인물이 기숙사에 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통학하는 이들보다 일본사회의 현실적인 부침이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이니치 사회가 갖는 정치성의 거세와 정체성 문제의 누락. 영화는 대신 그 공간을 '민족'으로 채우려 한다. 한민족으로서 갖는 자부심과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감독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말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학생에서부터 선생님까지 말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람들.(이와 더불어 역사의 이해 역시 중요한 요소이나, 앞서 말했듯이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대범하게 누락시키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민족의 강조는 오히려 자이니치 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결국 소수자로서의 자이니치는 20세기 '국가'와 '민족'이 만들어낸 문제이며, 이는 기존의 관념을 강조한다고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같이 한중일 삼국의 민족주의가 극단적으로 재생산 된다면 그것은 결국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어리석은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자이니치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과 같은 체제 내 이방인을 통해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을 인지해야 한다. 근대가 만들어 놓은 굳건한 경계들이 얼마나 많은 개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 깨달아야 하며,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 동반자를 만드는 것이 21세기 우리의 몫임을 되새겨야 한다.
  
그래도 볼만한 영화 <우리학교>
 
▲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로 나가는 이들.
 
ⓒ 스튜디오 느림보
개인적으로 밋밋하고 단조로웠던 영화 <우리학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볼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는 처음으로 조총련 사회를 비교적 가감 없이 다뤘다. 영화는 남한 정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면서 단순히 친북단체로만 알려진 그들의 모습을 화면에 진솔하게 담아냄으로써 관객들에게 그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이들이라는 걸, 지금까지 그들에 대한 편견이 결국 우리의 반공이데올로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비록 그 키워드로 '민족'이 강요된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많은 이들이 근대의 역사 속에 자이니치의 존재를 아는 것만 해도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처음에 언급했듯이 영화는 우리의 공교육을 성찰케 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 입시만을 위주로 돌아가는 우리의 교육과는 달리, 각 개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또한 그 개인들이 상호 연대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전인적 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조총련 학교.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꿈꾸고 있는 공교육의 전형인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에서는 북한의 교육체제에서 일반화 되어있는 사상교육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차피 그 체제가 요구하는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근대교육은 존재하지 않을 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공교육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공공재로 이용되고 있느냐는 것일 것이다.
 
영화 <우리학교>. 다른 이는 몰라도 청운의 꿈을 품고 학교로 간 젊은 교사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05 03:08 2007/05/05 03:08

댓글1 Comments (+add yours?)

  1. 새벽길 2007/05/25 11:14

    추천은 했지만, 이 영화에 대한 찬사만 계속 듣고 있자니 짜증난다.
    우리학교라... 예전에 맹에서 나온 잡지 우리사상을 너희사상, 길을 찾는 사람들을 길을 잃은 사람들, 우리세대를 너희 세대, 이딴식으로 불렀던 것이 불현듯 생각났다.
    '우리'라는 말이 예전부터 조금은 거북스러웠다.

     Reply  Address

Leave a Reply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gimche/trackback/415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List